2022.06.30 (목)

학생칼럼

4.19혁명에 불씨, '김주열'

 대통령 선거는 5년에 1번씩 있다. 

 우리나라의 첫 대통령은 1919년 대통령이 된, '이승만'대통령이다. 그는 헌법을 바꿔 가며, 독재 정치를 이어나갔는데, 1960년 3월 15일에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부정선거까지 계획했다. 이에 대항해, 대구에서는 최초의 학생 민주 운동이 일어났지만, 부정 선거는 시행되었다. 

 

 시민들이 이 부정 선거를 바로 잡기 위해서 시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중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사상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주열'이다. 김주열은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는 시민들과 함께 시청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방차가 시위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전진해 왔고, 시위대는 혼란에 처했다. 또 경찰들은 시민을 향해 총을 쐈다. 그는 형과 손을 잡고 있었지만, 총을 쏘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손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시위가 끝난 거리에는 최루탄이 눈에 박혀 죽은 김주열의 시신이 있었다. 경찰은 그의 시신을 돌에 묶은 다음, 바다에 던졌다. 하지만, 27일 후, 그의 시신은 바다 위로 떠올았다. 그는 파도에 휩쓸 가지도 않았고, 부패도 되지 않았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돌아왔다. 

 

 

 김주열열사 사건은 일주일 만에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꾸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하와이로 도망쳤다. 

 

 김주열 열사는 고향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묻혔고, 묘비에는 '4월의 영혼, 故김주열'이라고 젹혔다. 그가 죽은 후에 그에게 편지 한 통이 왔다. 그것은 마산상고의 합격서였다. 그는 살아생전에 마산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간다고 어머니와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